필레 신전은..
파라오 시대에 건축을 시작해서
로마 지배 시대까지 건축한 신전이라
이집트 건축양식에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까지 볼 수 있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신전이다.
신전으로 향하는 참배의 길이다.
양쪽으로 열주가 늘어선 모습이다.
제1탑문 쪽에서
바라본 주랑의 좌우 열주들이다.
주랑은 이시스 신전을
향해 V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신전 앞의 서쪽 열주들..
사진에서 검게 나온 부분은
예전에 필레 섬에 있었을 때
일년동안 절반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는 흔적이라 한다.
원래는 지붕이 있었다는데
거의 다 무너지고 뼈대만 남아 있다.
이 열주들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시기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댐은 필레 섬의 불행이었다.
1960년 더 큰 아스완 하이댐이 만들어지자
필레 신전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었는데
마침내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신
전을 옮기는데 24개국이 협력했다.
신전을 이전할 때 전체를
분해해서 2~50톤 규모
로 40,000조각으로 해체한 후
돌마다 번호를 붙여서 퍼즐 조각
맞추듯 복원을 했다는데
1974년부터 해체 작업이
시작되어 4만 5천여 개의
신전 석재들이 옮겨졌다.
그후 1980년 3월 10일
이질키아 섬에 이전 완공하며
세상에 알려지다.
그 시대에 이런 신전을
지었다는 것도 대단하고
그대로 원형을 복원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안뜰 서쪽에 하토르의 머리 장식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작달막한 건물 맘미시가 있다.
맘미시는 탄생지를 의미하는데
이곳은 이시스가 파라오와
동일시 되던 호루스를 낳은 곳이다.
아기의 탄생과 보호 받는 장면들이
벽면에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이곳은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탄생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파라오의 산실 맘미시 하토르 얼굴이 조각된 주두
신전의 첫째 탑문이다.
벽면에는 장신의 여러 신들이 서 있고
어떤 신들은 옥좌에 앉아 있다.
왼쪽 벽면 아래에는 파라오가
계시의 몽둥이로 적들을 내려치는
모습과 이시스 여신이 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 벽면 아래에는
이시스 여신과 아들 호루스가
크게 새겨져 있다.
위에는 파라오가 이시스 여신과
호루스 신에게 예물을 바치는 모습인데
부조들은 많이 훼손되어 있다
탑문 오른쪽 벽면 아래를
약간 가리고 있는 작은 탑문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문이라고 한다.
1탑문 안으로 들어가다.
첫번째 탑문을 들어서면 안뜰이고
그 끝에 두 번째 탑문이 서 있다.
탑문의 오른쪽 벽면에 파라오가
호루스 신에게 예물을 드리고 있고
이시스 신이 호루스 뒤에서 오른 손을 올리고 있다.
이시스는 통상 머리에 옥좌를 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토르의 뿔을 쓰고 있다.
강력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 같다.
파라오와 호루스의 발 아래에는
둥그스럼한 상형문자 비석이 있다.
클레오파트라 2세가 이곳을 방문해 봉헌했다는
내용이 적혔다는데 이것이 이집트
상형문자의 마지막 기록이라고 한다.
하토르 신전 하토르는
사랑과 미의 여신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의 부인이다.
또한 태양신 라의 딸이기도 하며
추후 파괴의 여신 세크메트로 변하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트리야누스 정자
독특한 모양으로 인해 파라오의 침대라는 별명이 있다.
이집트가 로마의 지배 아래 놓인 후
황제 트라야누스(재위 98-117년)가 세운 것이라고 한다.
키오스크란 휴게소나 매점을 말하는데
의식을 행할 때 이시스 여신이 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기둥머리를 연 꽃처럼 깎은
14개의 기둥들로 이뤄져 있다.
지붕이 없는 신전건물이다.
로마시대 건물로 원래는 필레 섬에서 신
전군에 들어가는 입구 지점에 위치했다고 한다.
트리야누스 (AD. 53~117년)는
로마제국 13대 황제로서 칭송받았다 한다.
미완성의 단순한 구조의
이 건축물은 필레 신전군의
상징으로 충분해 보인다.
신전 서쪽 주랑 입구 강 쪽에
나일로미터가 있다.
유명한 나일강의 수위를 재기 위해
설치했던 유적 수위표라고 한다.
90계단으로 된 돌층계 벽에
물의 높이를 잴 수 있는 약 50cm로
나눈 눈금 표식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인 에라토스테네스가
기원전 230년에 지구의 둘레를
잰 곳도 바로 여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