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썸네일형 리스트형 카프리.. 이탈리아 남부 쏘랜토 항에서 뱃길로 30여분 가면 카프리 섬이다.. 바다 가운데에 그림같이 솟은 아름다운 자그마한 섬이다.. 지중해의 에머라드빛 물빛이 이런 것인가 할 정도로 멋진곳이다..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너 황태자비가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온후 더욱더 유명해진 카프리섬.. BC29년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카프리를 방문한 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카프리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이웃섬을 포기하면서까지 나폴리로부터 사들였다고 한다.. 그 다음 왕위 계승자였던 티베리우스 황제가 올림푸스의 12신에게 바친 12개의 저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페케지 여행이라 주어진 시간에 섬에서 나와야 했다.. 정작 가보고 싶은곳은 가지도 못한채.. 더보기 폼페이에서 쏘렌트로.. 폼페이에서 쏘렌토로 이동 개인이 운영하는 기차라함 소렌토 해변에는 1812년 세워진 고급호텔 ‘트라몬타노’가 있다. 이 호텔에서는 나폴리만을 배경으로 하는 지중해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괴테 바이런 스콧 셸리 키츠 롱펠로 입센 등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에서 절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 했다고 한다.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작사자인 잠밧티스타 데 쿠르티스 흉상.. 멀리 보이는 곳이 나포리와 소렌토항구 카프리섬으로 가기위해 폼페이역에서 기차를 타고 쏘렌토로 오다.. 나폴리만과 지중해를 한눈에 수 있는 아름다운 소렌토.. 나도 모르게 돌아오라 쏘렌토로 노래를 흥얼이다.. 더보기 폼페이 유적.. 폼페이는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지정된 세계 문화유산이자 이탈리아 내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에 묻혀 버린 폼페이는 그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장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모든 것이 보존되어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고향인 폼페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저주받은 도시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BC 6세기경에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BC 80년부터 본격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이 지역은 폼페이뿐만 아니라 에르클라네움이 발전하기 시작해서 폼페이 지역의 인구는 약 3만 명에 육박했다.. 화산 폭발의 징조는 이미 62년에 일어났고 인근 도시인 에르클라네움은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당시 폼페이는.. 더보기 트래비..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트래비 분수.. 트래비란 섬거리를 뜻하는 이태리어.. 이 분수는 1730년 경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지시로 만들어졌으나 이 분수의 물을 공급하는 수로는 2000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공사 기간은 1732년~1762년이니까 30년이나 걸려 완성.. 분수의 왼쪽 물줄기는 잔잔하게 오른쪽은 빠르게 흐르도록 만들었다는데 왼쪽은 제국 로마의 서방을 오른쪽은 동방을 의미한다고 한다.. 영화 ' 로마의 휴일 '에서 주인공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저 분수대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저곳은 본젤리또(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즐비하다.. 유명한 만큼 맛도 있었다.. 진실의 문... 하수도 뚜겅이라는 진실의 문..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끊어진다는 전설이.. 더보기 노을속 베네치아.. 산마르크광장 늘 동경하던 물의도시 베네치아를 가다..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하는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수상 도시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원래부터 수상에 지은 것은 아니며 현재 116개의 섬들이 409개의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다.. 베네치아는 15세기부터 밀라노 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를 장악했으나1797년에 베네치아는 자치권을 잃게 되는데 나폴레옹이 침략해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게 넘겨 버렸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의 주인인 세레니시마 가문은 몰락했고 그러다 1866년 베네치아는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왔다 문화적으로 살펴보면 베네치아는 주로 비잔틴 양식과 북쪽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고딕 양식, 그리고 이탈리아 중부에서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유일.. 더보기 원형경기장..(콜롯세움)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여분의 떠받치는 힘을 더하기 위해 적당한 언덕을 파서 세운 이전의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콜로세움은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며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 중세 때에는 낙뢰와 지진으로 손상되었으며 반달족에 의해 더욱 심하게 파손되었다.. 대리석으..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