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에는 두 개의 신전이 나란히 있다.
하나는 람세스 2세 자신을 위해 만든 대신전이고
다른 하나는 부인 네페타리를 위해 만든 소신전이다.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은
람세스 2세의 업적과 위용을 과시한 신전이고
기원전 13세기에 그의 재위 시절에
시작해 30여 년 만에 완공하여
자신의 왕권을 과시하다.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제3대 파라오(재위 BC 1279~BC 1213)로
67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여 영토 확장
안정적 치세 기념비적 건축물 건설등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를 이루고
13번째 아들에게 물려주고 92세에 사망하다.
신전의 전면 높이 33m
넓이가 38m 람세스 2세
좌상의 길이가 20m에 이른다.
장엄한 아부심벨 대 신전 앞에 서니
사람들의 키는 조각상의
발치에서도 한참 아래에 있다.
신전 입구의 거상 4개는 모두 람세스 2세이다.
엄창난 기세를 과시하는 좌상이다.
상층부에는 원숭이들이 도열해 앉아
제일 먼저 일출의 햇빛을 받아 두 손을
들어 태양신 라를 찬양했다 한다.
신전 위쪽 벽면에 라 호라크티가 부조되어 있다.
이 대 신전이 라 호라크티에게 바친
신전임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라 호라크티는 태앙의 신 라가 결합한 신이다.
머리 위에 떠 오르는 태양
라 신의 화신인 태양 원반
왼손에는 우세르왕 홀을
오른손에는 마트 여신의 초상을 들고 있다.
그 좌우로 람세스 2세가 상 하 이집트를
의미하는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 있다.
이마에는 왕권의 상징 우라에우스 뱀이 있고
가짜 수염을 단 모습이다.
람세스 2세 다리 사이엔
그의 어머니와 레페르타리의 전신상이 있다.
부인 레페르타리 신전은 바로 옆에 위치하고(소신전)
무덤은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 있다.
람세스 2세는 부인중에
레피르타리를 가장 사랑했다 한다.
카이로 박물관에서 언급한 바 있음.
다리 사이에는 부인과 아들
딸의 모습을 조각했는데
제일 왼쪽이 레페르타리이다.
2번째의 람세스상은 재위 31년에
강한 지진으로 상반신이 무너져
발밑에 놓여 있는데 보수의
어려움이 있어 그대로 두다.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인 신왕국이
몰락하면서 아부심벨 신전은 오랫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1813년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신전 입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지인이었던 이탈리아의 탐험가
조반니 바티스타 벨조니에게 알렸고
1817년 벨조니가 입구를 발굴한 다음에야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아부심벨 신전은 약 2,400년 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었기에 다른 신전에
비해 훼손을 덜 되었다고 한다.
신전 안에 들어서면 어둑한 열주 홀이다.
홀 공간 좌우로 대형 석상이 4개씩
일렬로 위엄 있게 신전을 지키고 서 있다.
죽음과 부활의 신 오리시스신의 모습으로
묘사된 10미터 높이의 람세스 2세의 석상들이다.
지하세계의 통치자 오시리스의 8개
기둥이 바치고 있는 전실기둥이다.
내부는 폰으로만 촬영하는걸 하용하다.
그뒤쪽으론 람세스2세 파라오의
전투장면 부조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아부심벨 신전이 상이집트의
먼 변방 국경지대에 세워진 이유는
호전성이 강한 누비아족의 반란의 싹을 자르고
나일강 상류의 이민족들의 곡창지대인
나일강 하류 침범을 경고하는 전시장의 의미가 있었다 한다.
그 당시 철기 무기를 지닌 히타이트와 카데시
전투에서 적을 무찌르는 람세스 2세 파라오의 용맹한 모습을
부조로 많이 조각해 놓아 승리의 영웅처럼 묘사해 놓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승부였다고 한다.
히타이트와 맺은 평화 조약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휴전 조약으로 유명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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