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카서스 3국

백만송이 장미..

 

공원 추모의 벽 앞에

홀로 버스킹 하는 통기타가수..

백만송이 장미등을 부르다.

 

 

 

군데군데 버스킹을 즐기는 사람들

 

 

 

 

 

 

 

시그나기 어디를 가도

조용하고 고요해 이곳이 여행지가 맞나싶었다.

간간히 소그룹 여행자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시그나기 박물관

 

조지아에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두 사람 태어났다.

한사람은 소련을 미국과 함께 세계

양강으로 만든 독재자 스탈린과

또 한사람은 조지아

국민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이다.

 

 

 

4월9일 공원 초입엔

니코 피로스마니의 청동 두상이 있다.

그는 시그나기 부근에 있는 작은마을에서 태어나다.

 

 

 

니코스 피로스마니 자화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난 그는 

간판쟁이 칠쟁이 온갖 일을 다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생전에는 평가를 받지못하다.

 

 

 

 

시간이 가고 그의 그림이 주목 받기 시작하다.

그럴 즈음  1918년 그는 심한 독감에 걸려

55세의 나이로 평생 홀로살다 사망하다.

 

 

 

 

니코 피로스마니는

사후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하나인 거장 피카소에게 영감을 

준 화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해 지면서

그의 작품들이 전 세계 박물관에

소장하기 시작하다.

 

 

 

 

현재 남아있는 그의 작품은

약 200점 정도로 140여점은

트빌리시 국립미술관에 소장

이곳 시그나기 박물관에는 14점 소장하다.

 

 

 

 

 프랑스의 배우이자 가수였던 

마그리트 드 세브레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순회 공연을 하던중

1905년 조지아 트빌리시의

한 술집에서 공연을 하다.

그 자리에는 니코 피로스마니가 있었고

그는 노래를 하던 그녀에게 반하여

 이후로 그녀를 짝사랑 하다.

 

 

 

 

.

 

가난한 피로스마니는

가지고 있던 전재산을 팔아  공연중인

그녀가 머물고 있던 호텔 앞을

수많은 장미 꽃 (그야말로 백만송인 장미)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그녀의 응답은 냉담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녀는 떠났어도 그녀을 잊지 못하며

상상속에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그녀의 모습을 그렸고

그후로도 몇년간 그녀의 그림을 그렸다 한다.

 

 

니코 피로스마니 작품

왕진가는 의사

 

 

니코가 죽은 후

그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러시아 대표 시인인 안드레이 보즈넨센스키가

시로 쓰고 라트비라 출신 작곡가 레이모드 파울스에

의해 백만송이장미 노래가 탄생했다고 한다.

조지아 수도 트벨리시 레스토랑은

라이브 가수가 의례히 이 노래를 부르다.

 

 

 

 

 

 

 

 

'코카서스 3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드베 수도원..  (52) 2024.08.27
전통 와이너리..  (59) 2024.08.25
상족암(2)..  (72) 2024.08.22
4월9일 공원(April 9th Park)..  (66) 2024.08.21
세인트 성조지 교회..  (41) 202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