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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고택의 미..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고택의 미.. 어디하나 졍겹지 않은곳이 없었다. 우리 선조들의 어떤 모습으로 살아 왔을지 미루어 짐작이 되는 곳으로 보존이 어찌나 잘 되었던지 그 매력에 푹 빠진날이다. 더보기
덕천서원.. (사진 클릭 : 크게보기) 1576년(선조 9)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09년(광해군 1) 덕천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그 뒤 최영경을 추가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되었다가 1920년대 지방유림이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숭덕사 경의당 동재 서재 신문 대문 세심정 산천재 상실 장판각 별묘 문루 재실 고사등이 있고 신도비도 있다. 숭덕사는 3칸으로 된 사우로서 조식의 위패와 최영경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경의당은 5칸으로 된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동서 양재는 .. 더보기
첨성대..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국보 제31호 첨성대는 신라 시대에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천문 관측대로 과학적이면서도 신비함이 가득한 건축물이다.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아시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기도 하다. (다음백과에서 옮김) 실로 오랜만에 첨성대를 가보다. 주변엔 꽃으로 가득하던 그곳.. 여전히 내리는 폭우속에 첨성대를 여러 모습으로 담다. 더보기
폭우..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그날은.. 사진을 하면서 경주 황성공원 맥문동 첫 출사날이다. 폭우가 내리다. 다음날도 비 예보가 있었기에 망서릴 이유가 없었다. 더보기
폭우속에서.. (사진 클릭 : 크게보기) 폭우가 쏟아지다. 한손엔 우산 한속엔 카메라를 들고 빗속을 헤메다. 더보기
수선사를 떠나오며.. (사진 클릭 : 크게보기) 목수국이 한창이던 수선사.. 한 여름 무더위가 살짝 비껴간 그곳에서 머문시간 그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더보기
수선사.. (사진 클릭 : 크게보기) 수선사는 여경 주지 스님이 30여 년 전부터 다랭이 논을 사들여 손수 터전을 일궈 가꿨는데 건축이나 조경과는 무관한 스님이 논에서 나온 돌과 뒷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활용해 연못과 정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수선사는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경남 비대면(언택트) 관광지 3선에 들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맨 아래 해우소이다. 지우당님이 호텔급이라고 칭하더니 역시나.. 사찰 해우소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곳은 처음보다. 너무 깨끗하고 특별해 담다. 더보기
아름다운 사찰.. (사진 클릭 : 크게보기) 수선사.. 닦을 수(修) 봉선 선(禪) 산청 수선사는 마음을 닦는 좌선의 장소를 뜻하는 작은 절이며 지리산 웅석봉 기슭에 있어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아름다웠다. 템플스테이 건물 주변에 고즈넉한 연못과 목책길이 조성되어 아름다움을 더해주다. 아름다운 사찰로 알려진 이유가 있었다. 더보기
아아~~!! (사진 클릭 : 크게보기) 아아.. 마이크 테스팅.. OO반장님 현장 사무실로 와 주세요~~!! 라고했을 마이크는 제 기능을 잃은지 오래인듯한 마이크에 내 시선이 멈추다. 높은곳에서 내려다 본 흙길은 한때는 작업 차량들로 먼지 풀풀 날리면서 바삐 다녔을텐데.. 여름이 깊어가는 무성한 숲에.. 더보기
폐교.. (사진 클릭 : 크게보기) 안타까운 장소를 가다. 공사도 많이 진행 된듯한데.. 어떠한 이유로 건축이 중단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잡풀들이 무성하고 여기거지 건축 자제들이 흩어져 있었다. 부도란 현실앞에 대응하기 힘든.. 더보기
그때를 아시나요. 그림만 보아도 그 시절의 정서가 그려지는.. 그때가 있었다. 쉰세대는 알지만 신세대는 모를 그때를 아시나요. 더보기
추억만들기.. 마비정.. 벽화마을을 가다. 시골집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동네였다. 벽화를 보니 하나같이 정겨운 모습이다. 추억은 고스란히 우리가슴 깊이 남아 있거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