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기도

고운너..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관곡지.. 이른시간이라 빛은 없었지만.. 나름 운치있게 담을수 있었다. "Frank Mills - Bilitis" 더보기
흔들전망대.. 갯골하면.. 흔들전망대가 상징처럼 떠오른다. 오랜만에 올라가려니 재정비로 폐쇄중 이었다. 뒷쪽까지 걸으면서 폰으로 이리저리 전망대를 담다. 더보기
폰으로 담은..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갯골에 가다. 무거운 카메라 대신 폰하고 물만 가지고 만보가량 걸었다. 카메라를 들지 않으니 덥긴 했지만 날라 갈것만 같았다. 더보기
용흥궁 내부.. (사진 클릭 : 크게보기) 용흥궁은 창덕궁의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으로 지어져 소박한 느낌이 든다. 궁궐의 격식에 따라 내전 외전 별전이 있으며 모두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내전 오른쪽과 별전 왼쪽에 각각 우물이 1개씩 있고 별전 마루 앞에 작은 정원과 별전 오른쪽에 조금 더 큰 정원이 있다. 용흥궁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더보기
철종생가(용흥궁)..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강화읍 관청리 441번지 강화 도령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이다. 용흥궁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보통의 민가였으나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철종 4년(1853)에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했으며, 고종 때(1903) 청안군 이재순이 중수했다 현재 건물은 내전과 외전 별전이 각각 1동씩 남아 있고 어릴적 이름이 원범인 철종은 영조의 고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증손자이다. 증조할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익히 아는 바이고 할아버지 은언군은 아들 상계군이 반역을 꾀했다해서 강화에 유배되었다. 원범이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어 온 것은 11세 였다. 그의 나이 19세 때(1849) 헌종이 후사없이 세상을.. 더보기
바람아~!!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개망초가 필 즈음.. 바람불면 달려가는 군락지 안개꽃보다 더 고운.. 더보기
능소화.. (사진 클릭 : 크게보기) 두물머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코스처럼 가는 곳에 들리다. 빗속에 곱게 핀 능소화.. 더보기
장마.. (사진 클릭 : 크게보기) 연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이 피기 무섭게 장마가 시작되다. 비 바람에 연꽃의 흐트러진 모습.. 그 조차도 아름다웠다. 더보기
잠시.. (사진 클릭 : 크게보기) 불두화.. 둥근형태의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불두화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사찰에 많이 심겨져 있다. 님들.. 며칠 자리 비웁니다. 오월 잘 보내시구요. 행복한 유월 맞으세요. 더보기
다중놀이.. (사진 클릭 : 크게보기) 물의 정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거장처럼 들리는 능내에 가다. 강따라 걸으면 강물과 꽃이 있어 다중놀이에 빠지다. 더보기
길 위에서.. (사진 클릭 : 크게보기) 길 위에서 - 최백호 1.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대답 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왔네 푸른 잎들 돋고 새들 노래를 하던 뜰에 오색향기 어여쁜 시간은 지나고 고마웠어요 스쳐간 그 인연들 아름다웠던 추억에 웃으며 인사를 해야지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았다면 이 밤 외로운 술잔을 가득히 채우리 2.푸른 하늘 위로 웃음은 날아오르고 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기억할게요 다정한 그 얼굴들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떠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면 이 밤 마지막 술잔에 입술을 맞추리 긴 꿈이었을까 어디만큼 왔는지 문을 열고 서니 찬 바람만 스쳐가네 바람만 스쳐가네 가사가 삶을 돌아보게 하는군요. 더보기
강가에서.. (사진 클릭 : 크게보기) 살짝 안개가 드리운 강가.. 한폭의 풍경처럼 지나온 강자락을 따라 선명하게 금을 그어 놓은듯 하다. 서정이 흐르듯한 이른아침 강가는 글로 표현할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더보기